하루히즘 이후로 한국에 본격적으로 몰아친 라노벨 열풍. 그리고 돈냄새를 맡고, 혹은 나름 비전을 가진 레이블들이 탄생했습니다. 시드노벨이라거나 노블엔진이 대표적이고... 사실상 지금 유일하게 남은 레이블이죠. 원래 한 6~7개 있는데 막장 운영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무튼 시드노벨이 선두주자이고 이 레이블에서 내세운 것이 소위 말하는 '한국적 라노벨'이란 것이었습니다.
근데 시드노벨이 정말 '한국적' 라노벨을 내놓느냐 안 내놓느냐는 둘째치고 과연 '라노벨'이라는 장르에 한국형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는가부터 의문입니다. 이런 '한국적'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양판소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한국적 판타지 논란으로 인해 이영도와 모 작가가 갈등이 있었고 그 직후에 탄생한 '눈마새'는 한국 장르 문학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린 판소중 하나입니다.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증쇄되고 있죠. 근데 문제는 이영도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이 쓰면 판타지든 뭐든 그냥 한국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판타지든, 무협이든, 순문학이든. 어쨋든 쓰는 작가가 중요한 것이지 그 작품이 쓰여진 '국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눈마새도 어디까지나 이영도가 그냥 쓴 거지 단순히 한국 판타지란 이런 것이다라고 쓴 것도 아니고. 애초에 국가의 특색이 나오는 이유도 어디까지나 그 작가가 그 나라에 태어났기에 당연히 나오는 정서인 거지 그 국가만의 문학이기에 나올 수 있는 정서는 아닌 것입니다.
즉, 한국적 라노벨이든 판타지든, 이런 한국적이란 단어는 어디까지나 한국 특유의 '애국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런 거 엄청 좋아합니다. 한국 토종 호랑이라거나 토종 늑대라거나. 사실 백두산 호랑이는 어디까지나 시베리아 호랑이고 늑대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선 무조건 '한국'을 붙여서 우리나라 고유의 무언가라로 추켜세웁니다. 즉, '한국적' 라노벨이란 어디까지나 그냥 한국에서 써졌기에 한국 라노벨이라고 붙을 수 있는 것이죠.
거기다가 라노벨은 근본적으로 '굉장히' 애매한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르 문학의 경우 배경이 판타지면 판타지, 무협이면 무협으로 확실하게 정의되는 것에 비해 라노벨은 상당히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슬레이어즈부터 시작해서 DXD같은 판타지는 물론이고 금서목록같은 능력자물, 나친적같은 하렘물들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라노벨은 뭐라 딱 정의할만한 그런 '장르'라고 보기 굉장히 힘든 개념입니다. 굳이 힘겹게 정의하자면 10대 청소년들 혹은 오타쿠들을 대상으로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서브 컬쳐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요 독자들이 어떤 부류인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10대 청소년들, 오타쿠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에, 그리고 이런 독자들은 절대적으로 일본 서브 컬쳐에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라노벨과 일본의 정서를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라노벨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본의 정서를 담고 있어요. 결국 한국적 라노벨이란, 일본의 서브컬쳐에서 비롯되어지고 한국의 정서가 담겨져있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굉장히 기괴한 개념이 됩니다. 애초에 오타쿠들을 지배하는 것이 재패니메이션과 재팬 서브 컬쳐인데다가 사람은 자기가 즐기는 매체에선 대부분 '수동적'입니다. 아니 애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동적'이죠. 어디까지나 자기 즐길려고 보는 거지 굳이 머리 굴리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아요. 안 그런 경우야 당연히 이 카페를 예시로 들 수 있지만, 대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적' 라노벨을 한국의 독자들이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게 '일본 현지'에서 수입된 라노벨보다 못하거나 겨우 비슷한 수준의 것들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의 정서를 담은 한국만의 라노벨'이 아니라 일본의 라노벨과는 다른 '새로운' 라노벨을 원한 것이죠. 오타쿠들을 대상으로 만족시킬 수 있으면서도 일본의 서브 컬쳐와는 다른 창의적인 작품을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건 전혀 아니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하고 '한국적' 라노벨이란 이름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우린 '한국'의 정서가 담긴 라노벨을 원한다가 아니라 '새로운' 라노벨을 원한다는 것이죠. 물론 그런 걸 원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현실이긴 하지만...
물론 시드노벨이 무작정 지금처럼 돈만 되는 것만 내놓았던 것은 아닙니다. 해한가라거나 미얄 시리즈, 초인동맹 등등... 기성 작가들을 기용해서 특색있는 라노벨들을 내놓았습니다. 근데 대부분은 망했죠. 왜냐하면 너무 특색있는데다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동적이기에 '지금까지 봐왔던 것들과는 다른 라노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마케팅이 대차게 실패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어쨋든 한국에서 서브 컬쳐로 장사질하기가 굉장히 힘든 현실이죠. 일본의 바로 옆나라이기에 따끈따끈하고 재밌는 작품들을 얼마든지 바로 볼 수 있는데다가 워낙 오랫동안 일본 서브 컬쳐를 보다보니 뭔가 조금만 달라도 '이거 내가 알고있던 그게 아니다.'라고 거부합니다.
가장 단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 조금 직설적입니다. - , 창작 지인들이랑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자기 닉네임이나 자캐를 일본식 이름으로 표현하면 100% 오타쿠. 특히 자캐도 일본식이면 답이 없다.' 물론 팬픽을 적다보면 배경이 일본이기에 당연히 오리캐도 일본인인 게 맞습니다. 근데 오리지널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일본인이고 배경이 일본인 건... 한국의 오타쿠들이 얼마나 일본 서브 컬쳐에 영향을 받는지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적는데 '굳이' 일본인 주인공에 일본이 배경인 시점에서 과연 '한국적' 정서를 오타쿠들이 받아들이긴 할까 의문입니다.
물론 이 얘기를 보시면 '그럼 판타지에 나오는 서양인은 뭐냐? 그 작가들은 서양 오타쿠냐?'라고 반론하시는 분들 계실겁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다릅니다.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일본인밖에 '할 수가 없다.'입니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오타쿠들은 '일본 서브 컬쳐'에 '지배'당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거기다가 한국 특성상 그런 서브 컬쳐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전혀 곱지 않은데다가 그런 환경 때문에 오타쿠들의 숫자도 극단적으로 적습니다. 이런 작디 작은 인재풀인데다가 오타쿠들도 결국에는 '대중'이기에 일반 대중처럼 수동적인 존재들입니다. 심지어 타국의 서브 컬쳐에 매진하고 있구요. 대중을 이끄는 것은 언제나 '뛰어난' 소수였지만 그 소수도 인재풀이 넓어야 겨우 나올까 말까합니다.
안 그래도 적은 숫자의 서브 컬쳐 매니아들이 외국의 서브 컬쳐에 빠져있는데다가 한국 특유의 문화적 컨텐츠는 애초에 극단적으로 적은 이 최악의 환경 속에서 어설프게 되도안한 '한국적'인 무언가를 추구하는 행위는 당연히 실패하게 되는 것이죠. 황금가지에서 그토록 공모전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대상을 타지 못했고 시드 노벨도 기성 작가들이 내놓았던, 혹은 내놓는 작품들 말고 후발주자들이 내놓은 라노벨들은 겨우 숨통이라토 트이면 다행이고 줄줄이 논란이나 되는 시점에서 우리 나라의 고유의, 혹은 작가만의 독특한 색을 가진 라노벨이 탄생할만한 창작 환경은 아니라고 봅니다. 차라리 라노벨말고 다른 레이블을 내놓는 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귀중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쓰는 법 강좌] 4. 처음에 작풍을 결정하는 대상 독자의 결정 (0) | 2015.01.07 |
---|---|
[소설 쓰는 법 강좌] 3. 자기분석을 해보자 (0) | 2015.01.07 |
[소설 쓰는 법 강좌] 2. <쓰기 전의 사전 준비> -메모를 추천- (0) | 2015.01.07 |
[소설 쓰는 법 강좌] 0부터 시작하는 소설 쓰는 법 철저 강좌! 1. -시작에 앞서- (0) | 2015.01.07 |
고찰 - 오타쿠 문화는 무엇으로 사람을 흡인하는가. (1) | 2014.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