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홍(猩紅)
1월이 끝나고, 학교는 부산했다.
교무실에는 끊임없이 학생들이 찾아 오고 있고, 다른 국어 선생님들은 첨삭을 위해 학생들의 글을 노려보고 있다. 센터 시험을 마치고, 다음은 2차 시험. 숨 쉴 틈도 없이 그녀들은 마지막 싸움을 향해 라스트 파트를 대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내 담당은 중등부였기에, 나 자신은 그렇게 바쁘지는 않았다. 나는 올해가 처음인 신인 교사이고, 나에게 첨삭을 신청하러 올 학생은 아는 사이 정도였다. ――그래, 유우 같이.
그 유우의 논술 첨삭을 마치고 나는 크게 숨을 쉬었다. 따로 지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적할 부분은 하면 할 수록 적어지니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센터 시험이 끝났을 무렵에는 괴멸적이었지만, 눈에 띨 정도로 유우의 학력은 오르고 있다. 이대로면 좋은 선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가르친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뭘 그리 웃고 있어요……?」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눈치챘을 땐 몸집이 작은 아라타가 있어서, 나는 살짝 놀랐다.
「얼굴에 나왔어?」
「응……」
「아니, 유우의 성적이 좋아지고 있어서」
「아……그렇구나. 어때? 유우 언니, 오사카 국립 대학을 수험 친다고 했는데, 그곳 편차치 높다든가……」
「으~응. 논술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아. 교과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그렇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인 아라타는, 데스크 훅크에 걸려 있는 열쇠를 집었다.
「그럼……부활 갔다올게요」
「응. 아, 나 일 끝나서 오늘은 회의까지 한가하니까 나도 갈게」
스탠드를 끄고, 일어섰다. 그녀는 이 아치가 여고 마작부 부장이고, 나는 그 고문이다.
아타라와 함께 널찍한 교무실 통로에 나가는 중에, 그녀의 다리가 멈추었다.
무슨 일이야, 라고 묻기도 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교무실 유리문 저 편에 잘 아는 사람이 보였다.
아라타는, 벌써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것을 얼굴 옆으로 들어 올려 작게 흔들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는 문을 열고 이쪽으로 걸어 왔다.
「쿠로, 열쇠는 벌써 내가 가지고 있는데」
「아, 그게 아니라..」
여기까지 온 쿠로는 고개를 가로로 흔들더니, 나를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 오늘……언니가 감기 걸려 버려서. 간병하고 싶어서 그런데, 오늘 부활 쉬어도 될까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쿠로의 언니, 결국은 유우에 대한 일이다.
「유우 언니 감기 걸렸어……? 괜찮아?」
「응. 조심하는 것뿐이니까. 걱정해 주어서 고마워」
그것을 듣고 나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이 시기에 가장 무서운 것은 컨디션이 무너지고,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인플루엔자 같은 거라도 걸려 버리면 시험 회장에 들어갈 수 없을 수도 있다. 1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내 마음에 달라붙은 불안은 완전히 불식 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일단 이지만, 괜찮을까요?」
쿠로의 목소리가 귀에서 울린다. 어째서인지 미끄러질 것 같아, 서 있기도 힘들다. 순순하게 승낙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이대로 순조롭게 가면, 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날아가 버렸다. 유우가 걱정이 되어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
「쿠로, 너는 부활에 가. 내가 보러 갈 테니까」
「에?」
아라타가 놀라며 나를 올려다 본다. 쿠로도 마찬가지로 비둘기가 장난감 대나무 총을 맞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아. 너도 춘계 대회가 가깝고. 연습은 하는 것이 좋아」
「그렇지만 선생님, 일은?」
「오늘은 회의까지 한가해. 4시반 정도 까지는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때까진 연습해줘」
그렇지만, 이라고 말하는 쿠로를 제지하며 「유우의 논술 참삭도 전할 수 있고」라고 말했다.
「그럼……알겠습니다. 열쇠는 우체통 뚜껑 뒤에 있으니까요, 그걸로 들어가 주세요」
「응」
나는 내 데스크로 돌아왔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학교를 떠났다.
☆
쿠로짱에게 폐를 끼쳤다--
현관에서 열쇠 소리가 들렸을 때, 처음 생각한 것은 그것이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여름에도 코트와 머플러를 벗을 수 없었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괴롭히기에 좋은 표적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언제나 쿠로짱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집에서도 요리를 만들거나 세탁하거나 하는 것은 쿠로였고, 나는 코타츠에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래서야 독립할 수 있는 걸까. 쭉, 그리고 지금도 불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어라,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들은 적 없는 발소리였다. 그것이 다가오더니, 내 방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노크 소리가 방 안에 작게 울렸다.
「유우, 나. 하루에」
「선생님……?」
「들어갈게」
문이 열렸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은 아카도 선생님이었다. 놀라서 상반신을 일으키려고 하는 나를 말리고, 선생님이 내 머리맡에 앉았다.
「어때? 상태는」
「많이……. 그런데, 어째서 선생님이……?」
「간병하는 김에 첨삭한 것을 주려고. 쿠로가 좋았어?」
「아, 아니요. 그런 건」
말을 더듬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원고용지를 꺼냈다.
「다음에 자세하게 말해주겠지만, 꽤 좋아지고 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나의 책상 위에 두고, 그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자도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역시 이런 익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잠이 안 오지 않고, 어느덧, 시계가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문득, 내 이마 위에 누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그 존재가 상냥하게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놀라 눈을 뜨고,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유우」
그 입술이 작게 열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무심코 숨을 들이쉬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미려, 애수, 불안… 여러 가지 감정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선생님……?」
방은 완전히 황혼색으로 물들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슬픈 빛하고는 반대로 방안은 난방으로 인해 따스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나는 선생님에게 무엇인가 한 것일까. 단지 살짝 컨디션이 무너뜨린 것뿐인데,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일까.
방 안은 따뜻한데, 마치 얼어붙는 것 같았다. 멈춘 시간에서,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숨겼다.
「유우, 너— 무리하고 있지?」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은 그것이었다. 시간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몸이 베이는 듯한 차가움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리하고 있어? 내가?
「어째서, 현 바깥으로 나갈 생각을 한 거야……?」
선생님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쉬어 있었다. 오열이 목 안에서 울리는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저는……어른이 되고 싶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쭉 쿠로짱에게 폐를 끼쳐 왔다. 아직 보답할 길도 없지만, 나는 이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은……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나요……?」
잠시 후, 그녀는 내 이마에서 손을 떼어 놓았다.
「내가 어른이 된 건……답안에 동그라미를 치게 된 것 정도야」
「……잘 모르겠어요」
그럴 거야, 라고 말하며, 선생님이 웃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단지 머리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대로 시간이 흐르고, 가실 때가 되었는지, 선생님이 일어섰다..
「벌써 26분이네. 가야겠다」
「감사합니다」
일어나려는 나를 말리고, 열쇠는 포스트에 넣겠다고 말하고는 그녀는 나갔다.
그리고, 구멍이 뚫린 방 안에서 나는 선생님이 한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있는 동안, 둑이 무너진 것처럼 졸음이 쏟아졌고, 어느 새 내 의식은 꿈 속으로 사라졌다.
☆
현관에서 나가자, 딱 쿠로와 마주쳤다.
「아, 선생님. 언니는 어때요?」
「기운 차린 거 같아. 재운 채로 두었지만」
「다행이다……감사합니다, 일부러」
「아니야. 그럼 이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는 쿠로에게 손을 흔들며 나는 현관을 나갔다. 태양은 이미 떨어지기 직전, 정확히 눈앞에 검은색과 오랜지색의 경계선이 그려져 있었다.
「저기, 쿠로」
현관을 다시 바라 보았다. 쿠로가, 무슨 일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른일까?」
「선생님은 쭉, 어른 아니었나요?」
「……그럴까」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쿠로에게 인사하고, 나는 마츠미가를 떠났다.
그런가, 그런 것인가. 어쩐지 모르게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쭉 어른이었는가.
자신을 옛 트라우마를 피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제자에게 의지;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에 맞지 않은 꿈을 꾸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유우에게서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무리가 되는 길을 고르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무리하게 『어른』이 되지 않아도, 아이인 채라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은,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다. 나와 유우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조금 전 유우에게 말한 나이 차이만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그 점에서 나와 유는 다르다.
하지만 논리를 쌓으면 어떤 세계라도 갈 수 있다는 마법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안경이 흐려져 안 보이게 되는 것 같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결국 그 정도인 것이다.